언론 속 WDU

2024-04-05조회수 : 270

사회복지학과 이경욱 교수, KBS 뉴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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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캡처


■ "밤이었으면, 다 죽었어"


2020년 8월 8일, 섬진강 제방이 터졌습니다. 흙탕이 휩쓴 수라장 속에서 강변 사는 노인들은 좌절했고 울었습니다. 87살 박순임 할머니도 이때 많이 울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는 게 심란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 반이 지나 '국가 배상'이 끝났습니다. 이 돈으로 할머니는 벽지를 새로 바르고, 깨끗한 침대도 들여놓으며 다시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밤은 이전처럼 편하지 못합니다. 처마를 때리는 저 빗소리가 문제입니다.


[박순임 / 2020년 섬진강 수해민]

"밤에 들어왔으면 죽었지. 밤에 물이 들어왔으면 죽었다고요. 가슴이 두근두근하죠. 혼자 있으니까, 혼자 있으니까 무서워…."


섬진강 제방이 터지기 전, 마을 이장은 "집을 나와 어서 피하라"고 쉼 없이 연락을 돌렸습니다. 마을회관에서 마이크를 쥐고 온 동네가 알도록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한낮에 벌어진 일이라 마을 사람들 모두 서둘러 대처했습니다. 할머니도 그렇게 몸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두고 할머니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밤이었으면, 잠든 채 맞닥뜨렸으면…." 이날부터 평생 삶터였고 벗이었던 섬진강은 공포가 됐습니다. 처마를 때리는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저 비가 또다시 집도, 소도, 이번엔 나도 집어삼킬까" 걱정이 돼 잠들 수 없게 된 겁니다.


■ "종아리, 배를 스쳐 차오르던 차디찬 감촉"


2022년 8월 8일, 단 하루에 400mm 넘는 비가 퍼붓듯 쏟아졌습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린 이날, 서울은 잠겼습니다.


빗물은 낮은 곳부터 덮쳤고 이 씨가 사는 '신림동 반지하'는 감옥이 됐습니다. 꼼짝없이 갇혀 죽고 살고를 마주한 그때, 창문을 깬 이웃들이 지하방으로 손을 뻗었고, 이 씨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살았다는 안도감은 잠시고, “혹시, 또 ” 불안감이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비가 오면 문을 열어두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 씨 / 2022년 신림동 반지하 침수 피해자]

"하수구 내려가는 관이라고 해야 하나? 하수관? 그 소리, 물 쫄쫄 쫄쫄 내려가는 소리가 조용할 때 들으면 더 잘 들리거든요. 그 소리 들으면 진짜 가슴이 철렁 철렁해. 비 오면 문 열어놓는 습관이 생겼어요. 혹시나 그런 일이 또 생기면 안 되는데, 혹시나…."


■ "하나도 안 나아졌어요. 점점 더해요"


"같이 밥 먹자고 했거든요. 그래 엄마가 일요일에 갈게 ,그랬는데…."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자식을 잃은 엄마는 오열했습니다. 생일 맞은 아들과 밥 약속을 했습니다. 아들이 사는 충북 청주로 가 좋은 밥 먹이려고 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청주로 가는데 아들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이제 곧 도착인데…." 그때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아들인줄 알고 집어든 휴대전화, 경찰이란 사람은 수화기 너머 믿기지 않는 말을 합니다. 아들이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거짓말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소리 지르고는, 그 10분을 내가 덜덜 떨면서 장례식장을 갔어요."


(나아진 것 같아요? 시간이 흘렀는데.)


"하나도 안 나아졌어요. 점점 더해요. 점점 더 보고 싶어요. 하늘만 봐도 원망스럽고 날이 너무 좋아도 원망스럽고…."


■ 84인의 악몽


국가 재난주관방송사 KBS는 언론사 최초로 재난경험자의 심리 변화를 추적해 진단키로 했습니다. 연구 수행은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장인 계명대학교 최윤경 교수 연구팀이 맡았습니다.


사례연구는 크게 3단계로 이뤄졌습니다. 1차 스크리닝 조사 → 2차 설문 및 심층 면담 → 3차 디브리핑 및 치료 지원입니다. 연구에는 최종적으로 84명의 재난경험자가 참여했습니다. 2020년 섬진강 수해민, 2022년 서울 반지하 침수 피해자,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족 등입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재난 이전의 삶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삶의 만족도는 '나쁨' 단계에 머물러 있고(4.91→2.14→2.97), 재난을 겪으며 악화한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4.95→2.41→2.81). 수면의 질 또한 나아진 경우는 25%에 불과했는데, 심리적 외상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42.8%가 여전히 불안 증세(GAD-7)를 겪고 있고, 63.1%는 우울감(PHQ-9)에 시달리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한 비율은 무려 80%에 달했습니다.


조사 참여자 가운데 10.7%(9명)가 자살을 고민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취재진과 연구팀이 심각하게 받아든 결과입니다. 기존 연구(국립재난안전연구원, 2019)에서 나타난 3.5%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여서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모두 정부의 관리 밖에서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중략)


■ 구멍 난 '국가 재난심리 지원체계'


국가의 재난 심리지원은 필요한 곳에 가닿고 있을까. 2022년, 자연재난 이재민은 57,405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정부의 심리지원은 1,988건에 그쳤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3.46%에 불과한 겁니다. 이재민으로 분류되지 않은 재난피해자가 많다는 걸 고려하면, 실제로 심리지원이 이뤄지는 비율은 더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게 취재진이 내린 결론입니다.


이경욱교수

[사회복지학과 이경욱 교수]


[이경욱 /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심리적 응급처치도 국가가 하겠다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 할 건데? 누가 할 건데? 하면 '글쎄요, 여력이 되면 해야죠', 약간 이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려면 이걸 실제 할 수 있을 만큼의 인력과 예산이 투입이 돼야 하는 거죠."


행정안전부가 적십자에 위탁을 줘 운영하는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는 센터장을 적십자사 직원이 겸임해 전문성이 떨어지고, 상근 인력은 센터당 평균 1.4명, 2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심리적응급처치(PFA) 교육 이수자는 평균 0.6명에 불과합니다.


보건복지부의 '트라우마센터'도 상황은 비슷한데, 전국에 있는 트라우마센터는 모두 5곳. 이 가운데 전임 정신건강 전문의가 있는 곳은 서울에 있는 국가트라우마센터 1곳 밖에 없습니다.


[심민영 / 국가트라우마센터장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재난의 정의상 그거는 내 힘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예요. 이건 벌이 아니에요. 이건 벌이 아니고, 사람의 운명 같은 거죠. 국가가 나를 보호해 주고 나의 회복을 지원해 준다면 훨씬 우리는 안정감을 가지고 살 수 있겠죠. 이런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너무나 상식적으로 필요하지 않겠어요."


삶터와 가족을 잃은 빈 곳에, 남모르게 배어든 트라우마.


세상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 고통스러운 생각과 감정을 몰아내려 애쓰지만, 그때와 비슷한

냄새와 소리만으로 공포는 되살아 납니다.


"참자, 버티자, 지나갈 거야" 아프단 소리를 내지 못해 홀로 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재난의 ‘속병’은 더 곪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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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84인의 기록, 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K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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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84인의 기록, 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 KBS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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