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DU 졸업스토리(글보기) | 학교소개 - 원광디지털대학교 입학지원센터

WDU 졸업스토리

2021-02-25조회수 : 275

[2021 우수작] 나보다 더 빛날 아이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 최희영(언어치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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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빛날 아이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큰 아이의 한글 해득이 늦어질수록 나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고, 도서관, 학교, 학원 선생님의 상담을 통해서도 
아이는 나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고민의 늪에 빠져들고 있을 때 “언어치료”를 알게 되었고 원광디지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원광디지털대학교에서의 2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첫 시작은 아이를 위한 마음으로 시작되었으나 그 과정은 나를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간 육아와 직장생활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속에 목표 없이 살던 내가 꿈이 생겼고, 나에게 꿈을 가지게 해 주었다. 
(여유정(최 희 영(언어치료학과))





2021년 2월 두 번째 졸업, 새로운 시작
2019년 편입을 준비할 당시는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2018년 아이의 한글 해득이 늦어질수록 나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고, 도서관/서점, 학교/학원 선생님의 상담을 통해서도 아이는 나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나 또한 점점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의 늪에 빠져들고 있을 때 ‘언어치료’를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원광디지털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언어치료’라는 단어를 듣고 나서부터 마음이 급해서인지 포털에서 검색한 OO 사이버대에 2학기에 입학하고자 하였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학과가 개설되지 않았다. 그리고 반년을 더 기다리다가 원광디지털대학교를 알게 되었다. 학교에 연락하여 개설여부를 물었고 현재 학생들이 많이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본격적으로 입학준비를 하였다.

20여년만에 다시 학교 입학이라니 ... 지금 생각하면 조금 무모하였다. 당시 나는 여행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여행사의 특성상 야근이 많았다. 또한 아이들도 어리고(당시 9세, 7세), 신랑도 건축쪽이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그때 생각에 사이버대니깐 학교에 갈일도 딱히 없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늦게까지 공부할 수 있으니, 무엇보다도 큰 아이를 위해 내가 좀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커서, 한 번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이 그때의 상황을 눌러버렸던 것 같다.

드디어 입학, 입학 후 1학기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하다. 교안을 신청해서 받아보았는데, 세상에 이런일이!! 모르는 단어 투성이에다가 수업을 들었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피곤해서인지 한 두시간 앉아있자니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그렇게 생각도 나지 않는 1학기를 보내고, 2학기가 다가왔다. 2학기부터는 실습과목이 있었다. 난 실습 OT부터 난관이었다. 실습날에 직장에서의 해외 출장이 잡히거나, 태풍이 불거나 등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실습OT 중 1번은 정말로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중도 출국하여 OT를 참석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 당시 나는 학업과 직장을 병행해야 해서 주말에만 실습이 가능하였는데 주말 실습을 위해 경기북부에서 전주까지 5~6번정도를 내려갔었다. 처음에는 자가로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저녁에 집에 도착하니 10시, 이후에는 버스를 이용했는데 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후에는 바닥나는 체력으로 신랑이 운전해서 전주까지 왕복하곤 했다. 그래도 함께 실습하는 선생님과 실습교수님께 응원을 받고 무사히 첫 번째 실습을 끝낼 수 있었다. 첫 번째 실습을 마칠무렴 건강상태가 너무 나빠져 연말 건강검진에서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
그 다음해 1월에 당뇨판정을 받았다. 회사에서 인원이 충원되지 않은 채 수 개월째 스트레스를 받았고, 육아와 학업을 함께 하기에는 몸 상태가 버텨내지를 못했던 듯 했었다.

그런데 내게 전화위복이라 해야 하나? 2020년 2월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해 여행업계가 거의 일시에 스탑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돈을 못벌게되어 아쉽지만, 나의 현재 상태에서는 어쩌면 이 시간이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장기휴직에 들어서게 되었고 두 번째 진단실습, 3번째 재활실습까지 학교의 도움으로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실습하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보호자를 만나고 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내가 이 아이들을 잘 이끌 수 있을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 아이도 제대로 간수 하지 못하는 내가 말이다. 하지만, 내 옆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내게 끊임없는 응원을 해주었다. 그리고 2년간의 결실을 맺을 언어재활국가고시 시험을 맞딱드리게 되었다. 20여년전, 첫 번째 학부생활에는 철없고, 천방지축이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심감으로 넘쳐나던 나는 20년이 흐른 지금에서 국가고시라는 거대한 시험앞에 그리도 주눅들고 작아지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시험 치르기 마지막까지 마음 한 켠에는 ‘합격’이라는 단어를 새기지만 입과 또 다른 마음 한 켠은 ‘불합격‘이라는 글자가 무시무시하게 나를 짖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12월 5일이 되었고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고시장에 들어섰다. 유사 대학수능입학시험처럼 엄격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시험을 치르고 나서는 그 문앞의 공기는 상쾌하기도 시원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나는 국가시험에 합격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 기쁨을 나의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고 나눌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또 한 번의 고민을 하게 되었다. 상급학교의 진학이었다. 그시절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학원‘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만만치 않으리라, 지난 2년의 시간을 겪어 봤으니 더 고민되고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주임교수님의 조언과 남편과의 상의 끝에 진학할 학교를 선택하고 진학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직 지난 2년의 시간이 모두 내 것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대의 특성상 5년간 지난 강의를 되돌려 볼 수 있다. 난 그 자산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원광디지털대학교에서의 2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첫 시작은 아이를 위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되었으나 그 과정은 나를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간 육아와 직장생활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속에 목표 없이 살던 내가 꿈이 생겼고, 나에게 꿈을 가지게 해 주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혹시나 아직도 무언가에 고민을 하고 있다면 특히 배움에 대해 고민을 하신다면, 주저말고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란다. 그것이 배움이면 당신에게 그 어떤 내용으로든 도움이 되실 것이라 생각된다.

졸업식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아쉽지만, 수년간 각자의 환경에서 졸업하게되신 졸업생들과 고품질의 수업제공을 위해 애쓰신 교수님 및 관계자들께 매우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우리 원디대 학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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