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DU 졸업스토리

2023-03-30조회수 : 6393

[2023 우수작] 일원의 진리에 눈뜨는 기쁨이 느껴진다. - 김미정(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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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의 진리에 눈뜨는 기쁨이 느껴진다.



김미정(원불교학과)



프로스트의 시 ‘The Road Not Taken(가지 못한 길)’은 20대의 내가 선뜻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애환으로 자꾸만 뒤돌아보는 그런 길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에 편입하여 늦깎이로 원불교학을 공부했다. 일곱 살 무렵 시장 골목의 뒤에 있던 우리 집 앞에 어느 날 정말 커다란 양옥이 마술램프 속의 지니가 밤새 옮겨다 놓은 것처럼 우뚝 서 있었다. 새벽과 저녁이면 똑같은 소리로 치는 목탁 소리에 잠이 깨이고 잠이 들곤 하였다. 어느 날 머리에 반듯한 길처럼 가르마를 탄 여자분이 손짓하며 담 너머로 알사탕을 주었다. 그곳은 내 고향 동네에 처음 생긴 원불교 교당이며 알사탕을 주신 분은 교무님이셨다. 나는 그 하얀 얼굴의 교무님이 너무 좋아서 가고 싶다고 하니 담벼락에 사다리를 놓아주어 먼 길을 돌아가지 않고 교당을 다닐 수 있었다. 법당에 있는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높은 벽에 걸려있던 한 장의 사진 속 할아버지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빙그레 웃는 모습이었다. 바로 원불교를 개교하신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이시다. 내가 지난 2년동안 온갖 열정을 다하여 공부하였던 원광디지털대학을 있게 된 것은 바로 이분의 타자녀교육 사상에 기반한 것이다. 스무살 남짓, 나는 문학에 대한 열망도 뒤로 하고 온통 소태산 대종사님을 좋아하는 일에 전부를 바치고 살았다. 그래서 소태산께서 파란고해의 일체중생을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로 인도하려는 원불교 개교 이념을 이 세상에 전하는 교역자의 삶을 살아가고자 다부진 꿈을 꾸었지만 어머니의 걱정으로 그 꿈은 이룰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원불교 전무출신의 아내인 정토회원이 되었다.

정토의 삶에 주어진 ‘자기정토·권장정토·화육정토’의 세 가지 과업에 충실히 살고자 하였다. 여성의 몸으로 가정의 경제를 혼자 책임지고 아이들을 키우고 소박한 한 칸을 마련하였으니 화육정토와 권장정토의 과업 십분의 육은 이룬 것 같다. 그런데 자기정토의 꿈은 늘 멀기만했다. 무결석 법회와 상시일기(원불교 마음일기)를 쓰고 기도와 새벽 좌선하고 봉공하는 일이 훈습 되었지만 늘 자신에게 묻곤 하였다.

‘너는 자기 정토를 얼마나 이루었니?’

그러다 5년 전 겨울, 자존감이 상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아픔을 이겨내고자 상담심리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지만, 내가 왜 그런 상실을 겪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해결의 보루로 미뤄뒀던 원광디지털대학 원불교학과에 편입했다.
원광디지털대학 원불교학과는 주로 원불교의 8대 교서와 마음지도사 강좌를 중심으로 강의가 이루어져 있다. 나의 큰 소득은 8대 교서들의 근간이 모두 원불교『정전』으로 이어져 편수되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결론은 『정전』에 대한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는 데 다다랐다. 상시응용 주의사항에서 ‘노는 시간이 있고 보면 경전, 법규 연습하기를 주의할 것이요’라고 하셨는데 원불교학과 공부를 하며 진정한 ‘자기정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늘 산다는 것에 밀려서 충실하지 못하였던 경전 공부는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아는 것만이 내가 구하고자 하는 묶인 인과의 실타래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교전을 무수히 읽고 쓰고 하였지만 그동안 ‘일원’에 대한 진정한 해오는 쉽지 않았다. 3학년 2학기에 박성호교수님의 ‘정전 교의론’을 들으며 나는 일원의 진리에 대한 까막눈을 벗었다. 나는 수도 없이 강의 영상을 들으며 일일이 손으로 강의 내용을 받아 적고 모르는 것은 넘치도록 질의응답에 묻기를 반복하였다. 등에서 땀이 나도록 원불교 정전 일원상을 공부하였다. 나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자존감이 바닥을 보이는 상실감 앞에서 소태산의 삶과 행적을 그토록 닮고 싶었던 20대 이후의 모든 삶이 모래성 밟히듯 무너지는 아픔을 겪으며 얼마나 지독한 마음 앓이를 하였던가? ‘내가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와 늦은 나이의 공부를 아이들이 힐책할 때마다 놀고 싶은 미혹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의 강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일원의 진리에 눈뜨는 내가 느껴지는 기쁨이 있었다. 인과의 해오를 얻어야 하는 절박함 앞에서 만났던 원불교 정전 일원상장(일원상의 진리, 신앙, 수행, 일원상서원문, 일원상 법어, 게송) 공부로 이들이 서로 나눌 수 없는 진리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교수님의 강의 토씨 하나까지 다 받아적으며 몇 번이고 듣고 또 들으며, 어느 날 언어명상이 돈공한 자리와 완연한 자리, 상에 대한 공부를 하며 나타나는 것에 분별 주착하고 시비하고 살았던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원상의 진리를 공부하니 제각각 날아다녔던 사은과 삼학과 사요 등의 교리가 일원상장 뒤에 줄을 서며 가만히 내려앉았다. 『정전』의 목차가 이해되었고 정전을 읽는 것이 몰랐던 영문도서를 해독하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성리대전으로서의 정전공부가 시작되었다.

스물여섯 무렵, 나는 어린아이들을 여름과 겨울이면 원불교 훈련을 시키는 일종의 캠프 같은 것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은 재미있었지만 무보수였고 힘도 들었다.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부산에 계셨던 향타원 박은국 교무님께 보고도 하고 인사도 드렸다. 그날도 “힘들었지. 돈도 못 받는 것 하고 싶지 않지?”
라며 늘 같은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야구 선수들이 연봉을 받는다. 그 사람들은 연봉이 정해져 있지만, 너희는 진리가 주는 연봉을 받는다. 백지수표이다. 꼭 받을 거다.
가끔 살면서 힘들 때면 나는 그 말씀을 떠올렸다. ‘언제 연봉을 주실까?’
살면서 내가 집을 한 칸 사면 그것이 연봉이라고 생각하고, 통장의 잔액이 쌓이면 그것이 진리가 주는 연봉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원광디지털대학 원불교학과에서 원불교학을 공부하며 나는 진정한 진리의 연봉은 아파트 한 칸도 아니고 통장의 잔액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소태산이 깨달은 불생불멸하고 인과보응 하는 한 두렷한 이 우주의 진리에 대한 영원한 해오를 얻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준안(은희) 교수님의 원불교 교사 강의를 통하여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얼마나 위대한 성자인지 다시 알게 되어 벅찬 감동만이 가득하였다. 성자는 떠났지만 성자가 직접 친제하신 경전은 세상에 남았다. 원불교학과 공부는 누구에게나 성태장양(聖胎長養)의 선물을 공평하게 주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른 새벽 기도를 마치고 원불교 총부 순례를 가는 길, 저 멀리 담 너머로 더 많은 늦깎이 공부인들에게 자력양성, 지자본위 삶을 살도록 혜명의 등불 밝혀주는 ‘원광디지털대학교’ 싸인에 훤한 불빛이 빛난다. 마치 세상을 밝히는 등불처럼.
자존감이 바닥을 쳐 끝판왕일 때 원불교 정전의 훤한 해오로 이제야말로 진정한 ‘자기정토’의 길을 용기 있게 한걸음 갈 수 있음을 알게 된 나는 두 손 모으고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가난하고 어린(어리석은) 동포들이 강건, 평화, 사랑, 은혜의 날들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The Road Not Taken(가지 못한 길)’-만일 누구라도 20대에 선뜻 가지 못한 길이 있다면, 세상 어떤 채널에서도 들을 수 없는 원불교 교리 강의가 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에 열려있다.
내 안에 너 있음을 결국 우리는 하나임을 말해주는 이 훤하고 행복한 진리를 알아가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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