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7조회수 : 1201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것이 꿈만 같다” 이미숙 원주민예총 국악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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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의 애잔하고 꾸밈없는 슬픈소리와 ‘경기소리’의 경쾌하고 명랑함을 겸비한 국악인
이미숙 원주민예총 국악지부장과 댄싱공연장 1층에 자리잡은 강원민예총 원주지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릴적부터 어머니의 권유로 국악, 피아노, 가야금을 배웠다. 서울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며 미혼시절 종로에 있는 국악학원을 다니다 중도 포기했다.
직업군인 배우자를 따라 90년대 초반 원주로 왔다. 결혼 이후 어릴 적 배운 국악이 그리워졌다.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 남부시장 근처에 있는 국악학원을 찾았다. 당시 원주에는 선생님이 없어서 경기민요를 배웠다.
30대 후반까지는 취미생활로 댄스를 배워 5년간 강사생활도 했다. 사물놀이에 관심을 가져 ‘상쇠’ 활동도 했다. 39세 되던 해 운명처럼 ‘국악’에 눈을 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이춘희 선생에게 사사(師事)했다. 2년간 원주에서 안성까지 통학하며 ‘전수’를 취득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1호 경기소리(긴잡가)’ 임정란 선생에게서 경기소리를 ‘이수’했다.
이수 후에는 이론에 대한 열망으로 원광디지털대학교에서 공부에 매진했다. 자녀 양육과 경제적 문제로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10년 간의 보험설계사 생활과 간혹 들어오는 행사로 근근히 버텼다. 목이 생명인 국악인에게 갑상선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으나, 수술 후에 재활치료로 이겨냈다.
이미숙 지부장은 “요즘은 국악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며 “현대음악에 뒤쳐져 후학을 양성할 기회 조차도 없다”고 토로한다. 자신이 20대에 국악을 배울 때에는 서울에만 국악학원이 있어서 모두 서울로 갔지만 지금은 서울에서도 국악인이 마땅히 나설 무대가 흔치 않다고 한다.
오히려 지방에서는 고유의 문화적 전통이 남아 있어 작지만 소중한 무대들이 많다고 한다. 2007년 창단한 한소리국악예술단 단원들과 원주 및 인근 지역을 다니며 우리의 전통소리를 알리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미숙 원주민예총 국악지부장은 이론과 실기를 병행한 국악인이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예술학과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국악교육전공 석사▲캘리포니아 임페리얼대학교 교육학 석사·문화예술경영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경기소리 최고지도자’ 과정 ▲국악자격평가협회 국악실기 및 이론연수과정 ▲전통국악음악교육 지도사 제2차 국악실기 및 이론연수교육과정(교직)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3호 놀량사거리(서도산타령) 전수교육을 이수했다.
▲국악교육자격인증서(경기소리 최고지도자과정) ▲황해도 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이수 ▲국악교육지도사(교직) ▲무형문화재 31-2호 경기소리 이수 ▲향두계놀이(서도소리 및 연회)전수증을 취득했다.
▲한국국악협회 제천지부 민요 전임강사 ▲단양군 여성발전센터 민요 전임강사 ▲영월 문화복지교육 향토민요전수 교육강사 ▲ 2021 강원예술동호회 활동지원사업 예술동호회_평창메밀꽃 민요단 전임강사 ▲영월문화원 민요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제12회 대한민국 전통예술 경연대회 최우수상 ▲제9회 한민족 아리랑문화예술제 우수지도자상 ▲위대한 한국인 대상 ‘국악부문’ 전통문화예술발전공로대상 ▲제15회 대한민국 전통예술 경연대회 ‘민요부문’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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