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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우수작] 42년 만의 기적! - 박경희(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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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 결혼식에 함께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학교를 포기해야 하나를 고민하게 했지만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힘입어 입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년 넘게 사람답지 않은 삶을 살았던 형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를 증오하며 살았던 시간들 속에서 삶의 의미조차도 꿈도 희망도 다 던져버리고 술독에 빠져 중독자 생활을 하던 제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과거에 저는 그 분의 말씀을 무조건 부정하고만 살아왔었고 제게 다른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을 만나고도 16년이란 시간을 제 삶은 없고 남 탓만 하고 살던 어느 날 큰 딸이 제게 한 말 한마디가 저로 하여금 술잔을 내려놓게 만들었고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했습니다. “엄마! 아기 낳으면 키워 줄 거지?” 고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걱정할 때만 해도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고 갑자기 찾아올 손주를 생각한다면 술잔을 내려놔야만 했습니다.
그 생각과 행동에 힘을 주신 분이 그때까지 묵묵히 지켜봐 주셨던 주치의셨습니다. 단 한마디의 강요도 없으셨고 응원해 주시기를 1년여쯤 되었을 때 이제는 다 못한 공부를 마무리하는 건 어떠냐고 권해주셨고 늘 주치의 말씀을 듣는 말 모든 것에 반대로만 생각했던 제가 정말 처음으로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게 됩니다. 제겐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우선은 학교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제 후원자 격인 사회복지사님, 목사님, 저까지 학교를 알아보는데 최선을 다했고 몇몇 학교 중 원광디지털대학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약간의 반대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치의께 상의를 드렸고 원광대를 졸업하신 주치의께서는 아무 문제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딱 한 가지 본인 당신께서 원광디지털대학의 교수라는 말씀은 쏙 빼고...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배신감(?)이란. 그리고도 저를 도와주시며 학과장님을 소개해 주셨던 선배님도 계십니다. 제가 있던 병원에서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수련을 받으셨던 분이시죠. 그렇게 무사히 원서를 낼 수 있었던 건 이경욱 학과장님의 배려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이었고 저는 그렇게 입학이라는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리바리 1학년을 시작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시작한 공부를 제가 4년 동안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를 걱정합니다. 사이버 대학이라 학교에 갈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경인지역장님의 초대로 밴드에 가입을 하고 단체 카톡방에도 들어가면서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러 학교를 찾기 시작했고 18학번의 학생이 되어 하나씩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학점에 대한 관심보다는 늦은 나이에 나도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욱 컸던 시간들이었고 중독 복지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며 회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여건들이 제겐 더욱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중독 복지 학술제를 통해 조사를 하고 준비를 하고 발표를 하면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배움의 재미를 느끼면서 나 혼자만이 아니라 추천을 통해 같은 아픔을 가지고 회복 중인 멤버들 역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다 보니 많은 도움을 필요로 했고 그때마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복지사님, 사회복지 2급이지만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멤버 등등의 도움과 함께 무사히 매 학년을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3학년 때 사회복지실습을 준비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기관이 실습을 받지 못했고 더 힘들었던 건 제가 다니는 병원마저도 실습기관으로 선정되지 못했기에 몹시 당황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중독 복지 실습 먼저 할 수 있어서 4학년이 시작할 무렵 학교에서 실시하는 중독재활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물러갈 생각도 없었고 이번에는 제가 다니는 병원에서 실습기관으로 선정되어 선 실습을 하면서 젊은 친구들과 3주 120시간을 당당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를 보시는 주치의께서도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기관의 모든 치료진들까지 조금의 혜택도 없이 그 모진(?) 실습을 마치고 2학기도 무사히 마쳐서 드디어 졸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그동안 인천에서 처음 시행하는 회복 상담가로 일을 하며 졸업만을 생각해야 하는데 주치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이젠 1급 시험을 보셔야지요?” 제게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하게 하시는 건 아닌지요? 하지만 어차피 4년을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19회, 20회 특강을 단 한 번도 결석 없이 들었던 터라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공부했습니다. 스트레스 받아 가며 살을 6kg 정도 찌워가며 열심히 한 결과 역시 제게 최고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 주치의와 면담을 하며 충격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박경희 님께 단 10%의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기적이 일어났네요?” 제가 답을 드렸습니다. “단 1%의 기대도 하지 않으셨나요? 전 그 1%의 기대와 많은 주위 분들의 응원으로 합격선에 도착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무려 42년 만의 졸업입니다. 영광되고 감사한 졸업이라 생각합니다. 4년을 지내며 어려운 일이 없었을까요? 있었어도 제가 견디고 이기며 할 수 있었던 것은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든 분들과 사랑하는 두 딸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제 졸업장과 이변이 없다면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사1급 자격증을 우리 두 딸과 함께 받고 싶은 작은 욕심이 생기네요. 졸업이 제게 또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열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학과장님 이하 모든 교수님들, 학우님들 감사합니다. 함께했던 지난 4년을 가슴에 품고 앞으로 남은 시간 열심히 살고자 합니다.
참고로 저는 올해 62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