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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9조회수 : 873

북을치다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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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옥류 북놀이  이수자 정선희 사진


진도북놀이는 양손에 북채를 쥐고 장구처럼 치기 때문에 잔가락이 많고 멈춤과 이어짐이 민첩하며 가락이 다양하다. 특히 심장 소리를 닮은 북소리와 즉흥적 춤사위가 어우러져 흥을 북돋운다. 그 흥은 진도를 넘어 전국 구석구석으로 널리 퍼졌다. 정선희 대표가 이끄는 ‘향연’은 진도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 끝,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다. 남쪽 끝의 소리는 어떻게 북쪽 끝에 닿았을까.

그의 인생에서 북놀이는 기술을 익히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을 배우는 과정이었고, 이들을 이끄는 힘은 끈끈한 정이었다. 스승은 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이었다. 전국에서 수백 명의 제자가 한자리에 모이고, 공연보다 함께하는 시간을 더 기다리는 공동체. 그 중심에는 예능보유자인 박강열 선생이 있다. 정선희 이수자는 “진도북놀이를 알아가며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북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했다.

진도북놀이는 북 하나를 메고 추는 춤이지만, 그 안에는 춤과 장단, 연희와 공동체 문화가 함께 살아 숨 쉰다. 연주자가 곧 무용수가 되고, 북소리는 장단을 넘어 몸짓과 호흡이 된다. 힘찬 북채의 울림 속에는 흥과 신명이 있고, 수십 명이 함께 북을 울릴 때는 한 사람의 기량보다 서로의 호흡이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진도북놀이는 혼자 완성하는 예술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이라 불린다. 박강열 선생이 평생 지켜온 것도 바로 그 정신이었다. 북을 잘 치는 사람보다 사람을 먼저 품고, 기술보다 공동체를 먼저 세우는 일. 정선희 이수자가 들려준 스승의 이야기는 전통예술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진도북놀이와의 첫 만남이 기억나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 권유로 사물놀이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그 시절에는 전통공연예술학과가 많지 않아 동아리나 사물놀이 패에서 배우는 게 흔했습니다. 박강열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제가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일산 연습실에 오셨는데 그냥 인사만 드리고 지나쳤습니다. ‘저런 큰 작품을 내가 어떻게 배우겠어’ 하는 마음이 있었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바로 시작했더라면 훨씬 빨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 제가 존경하던 선배가 진도북놀이를 정말 멋지게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나도 저 작품을 하고 싶다. 저 선생님과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 그게 제 목표가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2012년 일산에 박강열 선생님께서 일주일 과정으로 강의를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때 저는 지금과는 달리 조용한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던 것 같아요. 일주일 동안 배운 것을 그냥 끝내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면 회원들을 모아서 제가 배운 것을 다시 연습했습니다. 다음 주에 선생님이 오시면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드릴 정도로 반복했죠. 그 과정을 몇 달 동안 계속했습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이런 제자들은 처음 본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연습시키면서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도 저였습니다.

그래서 진도까지 직접 찾아가 배우게 되었다고요.
결국 답은 진도였습니다. 겨울이면 동계훈련이 있고 여름이면 하계훈련이 있습니다. 공연이 없는 계절을 이용해 전국 제자들이 함께 모여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이에요. 저는 자주 내려갔습니다. 한 번은 회원 스물세 명을 데리고 전수관을 찾아간 적도 있어요. 당시 전수관은 지금처럼 넓지 않았습니다. 너무 많은 인원이 와서 팔도 제대로 펼 수 없을 정도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박강열 선생님을 특별한 스승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사람을 품으세요. 제자가 백 명이면 백 명 모두 성격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누구 하나를 틀렸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십니다. 포용력이 정말 대단하시죠. 무엇보다 본인이 권위를 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능보유자로서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저희는 농담처럼 “친정아버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제가 장난기가 많아 사람들을 웃기는 것도 좋아하고 분위기를 즐겁게 만드는 것도 좋아해요. 어떤 분이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이제 이수자가 됐으니 조금은 품위를 지키시는 게 좋지 않겠냐”고요. 그 말을 듣고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 성격을 숨겨야 하나’ 싶어서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야, 나도 어깨에 힘 안 들어간다. 너는 이제 이수자잖아.”(웃음) 그 한마디에 모든 고민이 사라졌어요.

우문현답이네요.
선생님은 평소에도 판단이 굉장히 빠르세요. 그래서 많은 제자가 선생님의 지휘를 자연스럽게 따릅니다. 신기한 것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이 서로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보통은 각 지역에서 활동하면 서로 경쟁하거나 거리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우리 공동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국 전수 때가 되면 모두 함께 모이고 싶어 합니다. 이런 공동체는 정말 드뭅니다. 저는 그 힘이 결국 박강열 선생님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그대로 공동체 문화가 된 것 같아요.

경기도 일산은 진도에서 아주 먼 곳이죠. 그런데도 진도에 자주 갔다고요.
처음에는 작품을 배우기 위해 진도에 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것이 보였어요. 저는 진도의 말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 지역의 공기를 느끼고 싶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알고 싶었습니다. 북놀이는 악보만 익힌다고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전라도 특유의 억양과 호흡, 생활 속에 배어 있는 리듬이 작품 안에도 그대로 살아 있어요. 그래서 진도에 가면 음식도 일부러 많이 먹어보고, 자연도 오래 바라봤습니다. 결국 작품은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낸 결과니까요.

소리보다 삶을 먼저 이해하려 했군요.
국악을 공부하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어요. 악기보다 어려운 것은 사람의 소리라는 것입니다. 손으로 치는 악기는 연습하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어요. 하지만 목소리와 말투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그대로 담겨요. 판소리를 하는 분들도 사투리를 제대로 익히기 위해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생활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북놀이를 배우면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북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고요. 그래야 장단도 살아나고 춤도 자연스러워집니다.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거네요.
선생님께서도 기술보다 태도를 더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전수관에 가면 처음 온 사람들은 쉬지 않고 연습하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그만해. 연습은 너희 연습실에서 하고 여기서는 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렵게 진도까지 왔는데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습니다. 전수관은 경쟁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것을요.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보내는 시간이 결국 더 큰 공부였습니다.


앞으로 진도북놀이가 어떤 예술로 남기를 바랍니까.
오래가는 예술이면 좋겠습니다. 북놀이는 어린아이도 시작할 수 있고, 일흔이 넘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예술입니다. 젊을 때는 힘으로 표현하고, 나이가 들면 깊이로 표현합니다. 국악에서는 ‘곰삭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저는 진도북놀이가 바로 그런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몸 안에 쌓인 시간이 자연스럽게 춤으로 드러나니까요. 그래서 평생 함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놀이는 사람을 남기는 예술입니다. 북을 잘 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만드는 예술입니다. 전국의 제자들이 공연보다 서로 만나는 시간을 더 기다리고, 함께 밥을 먹고 웃으며 북을 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이 공동체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선희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문화학부 전통공연예술학과 졸업 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교 예술경영학 석사과정에 있다. 2016년부터 전통타악예술원 향연 대표로 있으며 진도북놀이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2022년 진도북놀이 양태옥류 이수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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