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DU 졸업스토리

2019-03-17조회수 : 1068

[2019 우수작] 서로를 이어주는 오작교로의 ‘초대’ - 유수현(한국어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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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문화학과 유수현

대학생활의 희로애락! 돌아보니 이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을 나는 참 많이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함께 공부하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 앎을, 지혜를, 경험을, 삶을 나눈다는 것, 나는 초대에 응했을 뿐인데 참 많이도 얻었다. 4년의 대학생활, 삶의 한 조각을 소개하려한다. 한국어문화학과 유수현


아, 기쁘다, 시험이 끝나고 방학을 하니.
아, 화난다, 시험은 어렵고 시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갈길 가니.
아, 슬프다,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답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으니.
아, 즐겁다, 드디어 졸업을 하고 꿈에 한 뼘 다가갔으니!

대학생활의 희로애락! 돌아보니 이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을 나는 참 많이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함께 공부하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 앎을, 지혜를, 경험을, 삶을 나눈다는 것, 나는 초대에 응했을 뿐인데 참 많이도 얻었다.
이제는 나도 이 좋은 초대를 누군가에게 할 때인 것 같다.
4년의 대학생활, 삶의 한 조각을 소개하려한다.

나는 중도 호흡기장애인이다. 장애인이 되고나서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정하고 나니 새 삶을 얻은 것 같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는 것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의 웃음 속에 담긴 아픔을 새겨보게 되었고 조금씩 주위의 약자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2013년부터 1년여 간 장애인야간학교에서 한명의 학생에게 3~4세 수준의 한글을 가르쳤다. 연필 잡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다. 결국 그 학생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 하며 서로 눈 맞추고 교감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가르친다는 것, 함께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참 즐거웠다. 이런 마음을 갖고 지내던 차에 대학을 졸업해야하는 개인적인 이유가 생겼다. 나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덜컥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에 입학원서를 냈다. 장애인야간학교에서의 한글수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은 가까울 것 같은 한국어문화학과에 원서를 넣게 된 것이다. 또한 이주민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기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게 왠지 나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나와 닮았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원서를 넣고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통지를 받고 난 얼마 후, 한국어문화학과 학과장이신 최은지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수화기너머로 학교생활의 지도를 그려주셨다. 수업은 한 차시 당 어느 정도가 소요되고 수업참여는 어떤 식으로 하면 되는지 등을 말씀해 주셨다. 열심히 공부하시라고 계획을 잘 짜서 시간을 잘 조율해서 공부하시면 될 거라고 차근차근 지도를 그려주셨다.

"4년을 하루 같이 공부해야겠네요." 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교수님과의 약속이자 나와의 약속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활의 첫 약속.

이를 기억하려 애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국어문화학과에 대한 막연했던 이해가 공부를 하면서 점점 한국어교육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적어도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묻게 되었다. 갈등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일에 일조할 수 있다면, 함께 할 수 있다면 참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방향적인 이해를 벗어나 상호문화이해라는 측면을 담고 있기에 더욱 빛날 것 같았다.

이렇게 나에게 점점 더 의미 있는 4년의 대학생활이 흘러갔다. 그런데 삶이 그렇듯 나의 대학생활에도 고비는 있었다. 2년여가 지난 즈음이었다. 너무 부족한 나를 보면서 자신감을 잃어갔고 완주를 못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잘 해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고민 끝에 교수님께 이 마음을 문자로 말씀드렸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면담을 위해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께서 빵과 차를 건네시며 내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기다려주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충분히 잘 하고 계시다고, 지금처럼만 하시면 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빵과 차와 함께 마음까지 나눠주신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그 날의 고마움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행복도 전염되고 불행도 전염된다고 한다. 난 행복을 전염시키는 사람이고 싶다. 그 날 받았던 격려와 따뜻한 마음을 담아서.

무사히 한 고비 넘기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졸업평가를 보았다. 졸업평가를 마친 후 나는 밖으로 나갔다. 합격통지가 오기 전이었지만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뱉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밖에는 눈이 쌓여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눈 위에 ‘4년 동안 수고했어.’라는 글귀를 적었다. 짧다면 짧은 이 말을 적으며 이 시간이 오기까지 애쓴 나의 어깨를 우선 토닥였다. 코끝이 시린 날씨가 고마웠다. 코끝이 찡한 마음을 대신할 수 있었으므로. 드디어 졸업평가까지 마무리했다는 떨림과 뿌듯함, 결과에 대한 두려움까지 합쳐진 이 마음을 날씨를 핑계로 표현할 수 있었으므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 시간이 있기까지 정말 모두 모두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게 오늘을 기억하자고, 더불어 정말 고맙다고.

큰 고비도 넘기고 합격통지도 받고 드디어 졸업을 맞이한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제 나는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를 졸업한 학생으로서 또 다른 시작을 꿈꾼다. 그건 좋은 한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좋은 한국어 선생님이란 함께 꿈꾸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그 어떤 조건보다 사람이 먼저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꿈에는 국경이 없다. 모든 이들의 꿈이 존중받는 학교, 지역사회, 나라가 된다면 좋겠다. 그 꿈이 별처럼 빛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의 목표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이들이 국경을 초월해 자유롭게 꿈꿀 수 있게 장을 열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원광디지털대학교에서 나의 꿈을 응원했듯이, 가능성을 믿어주고 이루지 못한 꿈을 조금 더 기다려 실천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듯이 말이다.

또한 이주민들이 보다 빨리 사회에 적응하며 그들도 지역사회의 한 몫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국어가 그들에게 친구로 다가갈 수 있게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고,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고, 언어와 언어를 이어주는 오작교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오작교의 ‘초대’를 나는 받았고, 대학생활을 통해 맛보았다.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쌉쌀하게 말이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은 <나는 배웠다 그리고 아직도 배우고 있다>에서 ‘해보지 않고는 가슴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인생은 내가 얼마나 체험해보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오지 않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말로만 다문화사회를 논할 게 아니라 그 속에 뛰어들어 호흡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그래서 그 행복이 이 사회와 함께 하는 그들에게도 전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공부한 것들을 나누고 펼치기 위해 한발 나아갈 것이다. 꿈을 펼치기 위해 장을 열어주고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원광디지털대학교와 한국어문화학과 교수님과 조교님, 선후배와 동기들, 그리고 가족과 직장동료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진심을 담은 고마움을 전한다.

입춘이 지났으니 앞으로 내릴 눈은 봄눈이려나?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어문화학과에 담긴 사연들이 봄 눈 녹듯 우리 마음에도 녹아들기를 기대해본다. 또한 초대에 응한 모든 이들이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되기를, 이제 다른 이들과도 이 행복을 나누기 위해 기꺼운 초대를 맘껏 하기를 설렘 담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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