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내 나이 57세에 손주를 둔 할머니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할머니가 아닌 청각장애 4급이라는 장애등급을 가지고 있는 제가 말이지요.
10년전 교통사고로 다친 후 온갖 의술을 다해 치료를 했지만 결국은 호전되지 못하고 청각장애자가 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잃어버린 자존감으로 인한 자괴감이 내 주변을 꽁꽁 묶어놓은 채 나를 한가운데 가두고 있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장애인복지카드를 찿고 나오던 날 왜 그렇게 서럽고 눈물이 쏟아지던지. . .
마침, 비가내리고 있어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연신 눈물을 닦으며 집에까지 오던 기억이 납니다.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 답답함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매일 매일 삶의 끝을 치닫는 연습만 반복하며 우울증으로 가족들의 마음에 많은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워하던 가족들도 점점 나를 멀리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장애인이 되고 3년이란 시간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의미한 삶으로 흘려보낸 것 같습니다
“엄마! 공부를 한번시작해 보세요. 내가 도와줄게요”
저의 흐트러진 삶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면서 원광디지털대학교 광고지를 한 장 건네주었습니다.
자존심이 허락 질 않아 아무 말도 못하다가 딸이 제집으로 돌아간 후 꼼꼼하게 읽기를 반복하고 다음날 학교로 전화하여 교수님의 자세한 안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기에 한방미용예술학과에 관심을 갖게되었습니다.
30분정도 담당자의 친절한 상담을 마친 후 즉석에서 등록을 마쳤습니다.
그때나이 57세 ~
적은나이는 아니지만 지금의 내가 아닌 멋스럽게 늙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손주들 에게,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학식과 교양이 겸비되어있어도 외모를 가꿀 줄 모르는 노년은 젊은이들에게 무시 당할 수 있으며 멘토 노릇을 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어도 내 몸의 체취는 감출 수 있어야하고 내 나이에 맞는 의상을 구비해서 입을 줄도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의 관리보다 내 자신의 관리가 제일 먼저란 생각으로 원광디지털대 한방미용학과 대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컴퓨터 속에서 만나는 교수님들이 그져 새롭고 반가웠습니다.
네일아트, 발관리,피부관리,두피관리 등등 제겐 너무 필요한 일상의 양식같은 내용들이었습니다.
난청의 장애가 있다 보니 놓치는 언어들이 많아 교수님들의 입모양을 더 많이 쳐다보게 되고 볼륨도 키우고 천천히 학습을 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강의를 들어야 했고, 나이 탓인지 이해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다른사람들은 한 번들으면 끝날 일을 나는 두 세번 반복을 해야 알아듣는 우둔함에 답답할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시험과 과제는 왜 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 . .
그 무렵 나는 방과 후 학습센터라는 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어린아이들과 클레이아트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눈뜨면 아침이고 뒤돌아서면 저녁, 하루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치는 듯 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바쁜 생활의 연속으로 2학년 여름방학에 갑자기 위기가 왔습니다.
‘이 공부를 내가 과연 해서 내 인생에 얼마나 변화를 일으킨단 말인가?’
자유롭게 살던 내가 컴퓨터 앞에 두 세 시간 앉아 있는 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난청장애가 심하다보니 듣는 것에는 더욱 한계가 왔습니다.(보청기는 내청력의20%밖에도움이되지 않음)
집중력과 순발력이 무너지니 학습의 흥미까지 점점 잃기 시작하여 당장 그만 두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자꾸 두려워지기까지 했습니다.
바람도 쐴겸, 그해 가을 처음으로 학교체육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열정적인 학우들의 행동에 많은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학과부스에서 일일이 웃음으로 학우들을 챙겨주시던 김효철 교수님의 따스함이 고마웠고개인적 으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되었습니다.
친절하시고 자상하신 교수님의 조언에 그렇게 마음먹었던 내가 부끄럽기 까지 했습니다.
섬세하게 나의 방향을 잘 논의해주셨던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다시 마음을 처음처럼
고처 먹고 기필코 졸업을 하겠노라고 내 자신에게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장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시니어들의 자기관리입니다.
그러다보니 화장품과 피부에 관심이 생기고 머리카락을 지키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배워둔 화장품 제조법과 아로마 테라피요법은 공부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일학년때 배운 색채학은 얼굴색과 맞는 옷을 구입하는데 많은 도움도 되지만 실생활에도 적잖은 도움이 되곤 했습니다.
얄팍한 지식이지만 주변지인들에게 옷 매칭의 조언을 해주는 멘토 역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멋진 할머니가 아닌,
세련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차림새를 연구하며 보여줄 수 할머니가 되고 싶어 요즘은 월간지로 나오는 패션잡지도 잘 챙겨보곤 합니다.
3학년 1학기에는 대전시민대학과 그 외 평생학습관 강사모집에 응시하여 수십명의 응시자를 물리치고 강사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모발과학, 화장품학, 아로마테라피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향기요법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우리학과에 대한이야기를 강의 도중에 나도 모르게 쏟아놓곤 할 때면 마치 제가 원광 디지털대 홍보대사라도 된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난청 장애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곤 했지만 첫 강의시간에 수강생자기소개를 시킨 후
“여러분! 듣지 못하는 불편함을 느껴본적 있으세요?”
“저는 지금 느끼고 있거든요. 사고로 청신경이 마비되어 현재 청각4급 장애인입니다.
혹시라도 수업 중에 여러분들의 제안을 못 알아들었을 때 조용히 손을 들고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인사를 나누다 보면 처음만나는 수강생들도 나를 칭찬하고 더없는 용기와 박수를 쳐 주곤 합니다. 어떤 분들은 강단 앞으로 나와 손을 꼭 잡아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강사생활은 또 다른 즐거움과 새로운 자아를 찿아 용기 있게 살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각 지역 축제에도 초대되어 천연 제품 만들어 쓰기와, 아로마테라피 향기요법은 많은 호응을 얻어 지역경제를 살리는 곳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끈기와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자유로운 시간에 얼마든지 공부하여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망설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나는 회갑을 넘어 노년의 시대로 가깝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살아 갈수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늘 내 이웃의 귀감이 되고, 현실벽에 부딪혀 망설이는 많은 장애인들의 귀감이 되면서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장애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오는 감기 같은 것입니다.
좌절하지 않고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정신만 있어도 장애는 극복됩니다.
엊그제 명절이라 찾아 온 내 자식들이 한마디씩 해주곤 합니다.
“엄마 졸업을 축하해요”
“엄마 멋있어! 시작이반이라고 얼마나 좋아요”
올해 7살된 손녀딸은 나의 가장 좋아하는 팬입니다.
그 조그만 입으로 조곤조곤 귀에 대고 한마디 하면 온 식구가 박장대소 합니다
“할머니가 제일 이뻐!!”
열 번을 들어도 싫지 않은 이 말에 이미 나의 꿈은 90% 이루어냈다는 생각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동반된 청각장애인에게 또 다른 희망을 갖게 해주신 여러 교수님 그리고 원광디지털대학교 한방미용예술학과 지도교수님께 다시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