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1조회수 : 4344
[2020 최우수작] 원광디지털대학교를 졸업하면서..... - 이나겸(한국어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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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한국어문화학과를 졸업하게 된 이나겸입니다. 졸업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주변에서 물심양면으로 저를 도와준 가족들, 선생님들 및 많은 고마운 얼굴들, 감사한 마음과 희노애락의 과정들이 스쳐갑니다. 사실 저는 외국 사람으로서 한국말을 한국 사람들처럼 하고 싶다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꿈같은 꿈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서 4년 동안 공부해서 학사 학위를 따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습니다. 처음에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어학과에 발을 들여놨을 때 과연 내가 이 과정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저 자신에게도 반신반의했던 일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봅니다. 지난 4년의 과정, 정말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저는 16년 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어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라북도 순창군 오지마을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3학년인 귀여운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소박한 가운데 나름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한국에 와서 무엇보다도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늘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쉽사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한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해 왔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먹고 자고 보이는 그대로 사는 것을 일을 하면서 그날그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가끔 특별히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나도 저 친구처럼 한국어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국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대한 반문은 나를 계속 괴롭혀 왔습니다. 한국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어떤 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던 나였습니다. 모든 것을 남편을 거치지 않으면 결론이 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저의 생각은 순창군다문화가족센터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저는 한국어를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말을 왜 잘해야 하는지 한국어 공부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결국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내가 가진 꿈은 나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저를 깊숙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어려운 생활 속에서 잊고 살았던 내 속에 살아 꿈틀거리던 꿈의 씨앗에 싹이 텄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절실한 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한국어 교사가 된다면 잠을 자지 않아도 좋았고 밥을 먹지 않아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진실된 꿈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어 선생님께서는 진실된 꿈은 어떤 상황에서도 꼭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한국어 선생님의 소개로 원광디지털 대학교 한국어학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한국어 교사를 할 수 있고 나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입학을 하는 과정도 힘들었습니다. 막상 입학을 하고 나니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받아들었습니다. 모르는 어휘도 빼곡했습니다. 덜컥 무서워졌습니다. 많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쿵쿵거리는 저의 두려움은 자신감을 하락시켰습니다.
‘내가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매일을 비몽사몽 했지만 남편이 이해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기뻤습니다. 농사만 지을 때는 왠지 모르게 허전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부 시작하면서 꿈이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생 중학생이 된 딸들에게도 엄마로서 꿈에 대한 중요성을 자신있게 일깨워주는 엄마가 되어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복분자를 따면서도 강의를 들으며 땄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농사일도 학교 공부도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어려운 만큼 앞으로 나아갈 길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내 생각은 나를 추락시켰습니다.
‘내가 과연 졸업을 할 수는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1학년 기말고사 무렵이었습니다. 피로에 지친 저에게 병이 났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파보지 않았던 제가 2달 동안 입원을 했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가족들도 한국어 선생님도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건강이 우선이니까 공부를 하지 말자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환경에 의해 포기된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럴수록 죽을 힘을 다해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어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확실하고 완벽하게 하는 꼼꼼함이 저의 장점이라 생각했고 선생님 또한 저의 그러한 장점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 또한 저의 마인드였습니다. 2016년 한국어문화학과에 입학을 한 2년 후 저의 기질적 특성을 살려 사회복지학과 복수전공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가만히 도리켜 봅니다.
제 꿈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마음을 먹었던 처음 생각이 싱싱하게 다가옵니다. 지나오는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는 것, 수많은 포기와 재기 끝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특별히 저에게 힘이 되었고 저의 부족한 부분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과 위로를 해 줬던 남편, 낮에 농사일을 하고 밤을 새서 공부를 하다가 가만히 눈을 감고 힘들어 울고 있는 저를 보며 대단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던 남편, 공부한 지 1년이 되던 해 결국 과로로 쓰러져 입원했을 때도 꼼짝하지 말리던 간호사의 말을 어기며 모든 책을 챙겨 병원에서 공부를 해서 기말고사를 봤던 일 등을 통해 남편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도 어쩌면 하나의 자격증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속으로 외국인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며 봉사를 했습니다. 봉사의 경험을 통해 지금은 저의 고향에서 온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문화학과를 통해 한국어 교사의 자격 획득과 이들을 마음으로 보듬을 수 있는 사회복지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복지학과의 전공은 저에게 있어 인생 사이클의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지나온 어려움들은 제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만큼이나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4년 과정을 거치며 배우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으로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꿈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상을 착하게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졸업식을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전하며 한국문화학과, 사회복지학과 교수님, 그리고 학우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