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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최우수작] 야간고등학교에서 시작된 꿈, 원디대에서 이루다.- 이미자(한국복식과학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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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고등학교에서 시작된 꿈, 원디대에서 이루다..
이미자(한국복식과학학과)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였습니다. 낮에는 구로공단에 있는 봉제공장에서 바느질을 하였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는 10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일솜씨가 좋아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재봉틀 앞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월급날이면 옷구경을 하러 온 서울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은 그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대 내내 일을 하다가 스물아홉, 당시로는 조금 늦은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둘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부터 동네 문화센터를 돌아다니며 양재 수업을 듣고 한복 강의도 들었습니다. 바느질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바느질을 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한복을 배우고 싶어 무작정 가까운 한복집에 찾아가기도 했고 돈도 안 받고 일해주며 곁눈질로 한복을 구경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바느질을 계속 한 덕에 일을 맡겨주시는 곳을 찾을 수 있었고 삼십대 후반에 집 작은방에 미싱을 들여놓으면서 저의 작은 공방이 독립을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저는 늘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자격증도 따고 싶었고 대학도 가고 싶었고 멋진 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한복의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하는 한복을 매일같이 만들고 있었지만 제대로 배워 만들고 싶다는 갈망으로 공방 이름에 ‘한복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흔 넷에는 염원하던 한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쉰 하나에는 한문화진흥협회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한복 외교 사절단 행사에 참가하여 나만의 한복을 주한대사 가족에게 입혀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반한 한복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는 열정뿐이었습니다.
쉰 둘에 받은 첫 수강생이자 제자는 나의 원디대 학우입니다. 저보다 스무 살이 어린 친구가 한복이 예뻐서 배우고 싶다며 공방에 찾아왔을 때 저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달해주고 싶었습니다. 3년 정도가 지나 제가 더 알려줄 것이 없을 것 같아 고민하던 때에 저에게 원디대 한국복식과학학과에 같이 입학하자고 하였습니다.
쉰 세 살에 대학이라니. 마음 한구석에서 늘 염원하던 대학이었지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제자가 강력하게 추천하였고 조카딸도 이모는 잘 할 수 있다며 등을 밀어주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더 늦는다, 지금 안 하면 후회한다는 마음으로 일생일대의 도전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원디대 20학번이 되었습니다.
큰아들 대입 때 사줬던 옛날 노트북을 다시 꺼내서 수업을 들으려는데 처음엔 로그인이 뭔지 업로드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아들과 제자의 도움을 받아 아장아장 걸음마하듯 대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수업 듣는 것만큼은 어렵지 않아 수업이라도 열심히 듣자, 과제라도 열심히 하자 하는 마음으로 노력했던 4년이었습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눈코뜰새없이 바쁘다는 말 그대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부터 점심시간까지 일을 하고 1시에는 다른 수강생이 와서 제 나름의 한복 전파에 힘을 썼습니다. 수강생이 돌아가면 저녁 8시까지 일하면서 틈틈이 강의를 듣고 집에 가면 과제를 했습니다.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은 온전히 과제에게 양보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돌아보니 한복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50대 중반의 침침한 눈으로 한국자수 수업을 두 학기나 들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수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하던 전공수업이었지만 과제를 직접 하는 것은 또 다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당의와 두루마기, 원삼과 단령을 직접 제작하는 수업을 들었을 때는 내가 이걸 배우려고 원디대 한국복식과학학과에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플랫패턴디자인은 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꿔왔던 패션디자인을 지금 처음,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수업이었습니다. 한국복식과 서양복식의 만남으로 미래의 한복을 내가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수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년 전 쉰 셋에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저에게 남편은 끝까지 못할 것 같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4년간 쉼없이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졸업전시회를 준비하는 저를 보고 이제는 ‘이 학사님’이라 불러줍니다. 아들들도 엄마 정말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조카딸도 응원해주어서 내가 진짜 한복을 전공한 학사가 되는구나 하는 것이 실감납니다.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봉제공장을 다니던 40년 전부터 갈망해왔던 체계적인 수업을 원디대 한국복식과학학과에 입학하면서 원없이, 마음껏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혼자 독학하며 전전긍긍했던 세월을 지나 수준높은 대학교육을 통해 실력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어서 원디대에 입학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입학을 망설이시는 예비 학우님이 계시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육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입학하자고 말해준 저의 첫 제자이자 원디대 동창동문이 된 이초연 학우님께도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한복 인생에 찾아와줘서 감사합니다.
온라인으로 서로 얼굴은 마주하지 못했지만 같은 시간에 등교하여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쳤던 모든 원디대 동문과 함께 해주신 교수님들께도 감사합니다. 졸업 후에도 같은 원디인으로 가슴 펴고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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