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모님께서는 시장에서 새벽장사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와 제 동생은 어린 시절을 외조부님과 외가 가족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통장을 하시면서 바쁘고 힘든 동네 사람들과 동사무소의 행정업무를 도와 주셨습니다. 동네의 대소사를 다 꿰뚫고 계시는 할아버지 두 손에는 항상 못과 망치 등 공구가 들려 있었고, 고장 난 물건도 고쳐 주시고, 망가진 집안의 장소도 수선해 주셨습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동네 참견을 같이 하고 다니던 저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대가족이고 어려운 형편의 어린 시절이었지만, 힘든 생활을 잘 참고 지내오신 외조부님, 부모님, 가족들에게서 화목한 가족애와 예절,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배우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힘들게 장사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 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학업을 준비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대학 진학 목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고,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진학하여 사회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세 번의 휴학기간 동안에 잠깐 중국 어학연수도 다녀오기도 하고, 장애인 인권 단체에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요리사 되기’란 목표가 생겨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하여 3년간 조리사로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고 육아 생활을 하였고, 너무 심신이 지치게 되면서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울한 덫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아쉬탕가 요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쉬탕가 요가는 정해진 요가 동작들이 점점 어려운 단계들이 있는 체계로 되어 있어 전 단계의 동작을 해내야지만 다음 동작을 선생님께서 안내해 주시는 방식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아쉬탕가 요가 수련하기란 목표를 세웠고, 3년 가까이 꾸준히 수련을 하고, 아쉬탕가 요가 강사로 회원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여러 직업이나 공부를 경험하고 실행해 나가는 동안 목표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며 삶을 이루어 왔습니다.
낮과 밤이 바뀌어 장사하시며 저희들을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서 어디 아프시다고 하시거나, 부모님의 모습에서 늘어나는 깊게 패인 주름, 흰 머리카락들, 자꾸만 굽어져 가는 손마디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머니께서 아프시다고 하시는 손가락 마디들과 쑤시다고 하시는 무릎을 주물러 드리면서 어떻게 하면 어머님의 아픔을 덜어드릴 수 있을까, 또 더디게 늙어 가게 해드릴 수 있을까란 고민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피부 관리실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피부미용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머님 또한 피부 관리 받는 것을 좋아하시어 저는 피부미용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피부미용 자격증을 취득하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제가 행하는 피부미용의 테크닉들이 타인에게 큰 행복감과 삶의 질적 향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너무 보람되고 행복하였습니다. 또한 제대로 몸에 대한 지식이나 피부 관리의 제반 정보, 지식을 공부하고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광디지털대학교의 한방미용예술학과는 제가 찾던 전공이었고, 유능하신 전문 교수님들과 학과 홍보 소개는 충분히 가슴을 뛰게 만드는 도전이라고 생각하여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입학을 하면 한방 미용학의 전반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 1학기 동안은 미용 전반에 대한 이해와 전공분야에 도움이 될 만한 배경지식을 쌓는 데 전념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한방을 도입한 미용의 세부적인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다시 미용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수립하고 안심할 수 있는 한방미용을 접목하는 연구를 할 것입니다. 또한 손으로 익히는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기에 꾸준하게 연습하여 제대로 갖추어진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배우는 자세와 열정을 가지고 미용의 중요한 기둥이 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게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펼쳐 보일 것이며, 늦깎이 학생의 열정을 원광디지털대학교의 밝은 미래와 함께하고 싶습니다.